About Text


1993년 11월 5일
미국 콜로라도 보울더에서
마샬 비안 서머즈에게
계시되었다

이 본문에 관하여


What you are reading in this text is the transcription of the original voice of the Angelic Assembly as it spoke through the Messenger Marshall Vian Summers.

Here, the original communication of God, which exists beyond words, is translated into human language and understanding by the Angelic Assembly who watch over the world. The Assembly then delivers God’s Message through the Messenger, whereafter it is transcribed and made available to you and to all people.

In this remarkable process, the Voice of Revelation is speaking anew. The Word and the Sound are in the world. May you be the recipient of this gift of Revelation and may you be open to receive its unique Message for you and for your life.


제2편 > 큰공동체 영성 > 제24장

큰공동체 영성을 배우려면, 매우 독특한 준비가 있어야 한다. 이 준비는 영성이 의미하는 것의 핵심으로 당신을 데려가야 한다. 그러면서 여전히 당신이 현실을 부인하거나 자신을 기만하는 일 없이 세상을 실제 모습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해야 한다. 이 준비는 당신의 힘을 키워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오해하거나 곡해할 위험을 최소화해야 한다. 이 준비는 당신에게 높은 목표를 향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그 목표가 당신이 닿을 수 없을 만큼 높아서도 안 된다. 이 준비는 당신의 내적 권한을 키워야 하며, 이때 당신은 자신의 영역을 초월한 큰 권한이 삶에 있음을 알게 된다. 이 준비는 당신의 모든 관계가 의미 있게 맺어지고 이해될 수 있도록 맥락을 잡아주어야 한다. 그래서 이와 같은 것들을 모두 이루려면, 매우 독특한 접근법, 즉 가능한 한 최상의 방법으로 당신의 과거 믿음이나 생각은 물론 세상에 길들여진 마음에서 비껴갈 수 있는 어떤 방법이 있어야 한다.

큰공동체 영성을 배우려면, 그쪽으로 가는 길, 즉 앎으로 가는 길을 배워야 한다. 우리가 이 책이나 앎을 다룬 모든 책에서 말한 것은 모두 당신을 이 앎으로 이끌고자 한 것이다. 앎이야말로 영성의 가장 핵심이며, 당신이 물질계에 있을 때 당신의 참자아이다. 또한 당신과 모든 생명체와의 결합이자, 큰 목적을 섬겨 실현되도록 당신을 세상에 파견한 큰 현실세계와의 결합이다.

앎으로 가는 길은 분명히 있다. 그 길을 따르려면, 당신은 한 계단씩 밟고 가야 한다. 당신은 껑충껑충 뛰어 서둘러 앎에 도달할 수 없다. 그러기에는 앎이 너무 크다. 그리고 가는 도중에 배워야 할 것도 너무 많고, 버려야 할 것도 너무 많다. 또한 점검하고 재점검해야 할 일도 많고, 얻어야 할 큰 깨달음도 너무 많다. 그러므로 당신은 앎으로 가는 계단을 밟아야 한다.

당신이 큰 산을 오른다면, 길을 따라 가야 할 것이다. 당신은 큰 산의 언덕들을 마냥 내달릴 수는 없다. 그래서 당신에게는 준비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당신이 도중에 만날 법한 모든 상황에 적응할 수 있게 해주고, 새로운 체험과 어려움에 대비할 수 있게 해주는 준비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또한 길을 따라 계속 올라갈 수 있도록 인내심과 확신을 얻을 수 있게 해주고, 폭넓게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질 수 있게 해주는 준비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만약 당신이 자신을 존중하지 않거나 자신의 큰 목표를 잊어버린다면, 이 준비 프로그램을 결국 따르지 못할 것이다.

당신이 산속에 있으면, 정상을 거의 볼 수 없다. 볼 수 있는 것이라고는 바로 주변에 있는 것들뿐이고,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고는 가는 도중에 변하는 주변 상황뿐이다. 최종 목적지는 거의 볼 수 없겠지만, 계속 오르다 보면 당신은 산 자체를 알게 될 것이다. 또한 길을 따라 산을 오름으로써 길을 알게 될 것이고, 한 걸음씩 오를 때마다 그 한 걸음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게 될 것이다. 한 걸음씩 발을 떼는 일에서 망설이고 판단하고 검토하는 것은 당신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당신은 산을 올라야 하고, 산을 오르려면 한 걸음씩 계속 발을 옮겨야 한다. 이런 식으로 산을 오르다 보면, 진행은 느리지만 꾸준할 것이다. 이렇게 하는 과정에서 당신은 배우는 모든 것을 깊이 체험하고 이해할 것이며, 당신의 성장과 안녕에 꼭 필요한 것들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계속 나아가면서, 삶을 직시하고 삶에 내주고 삶에서 당신의 길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자질들을 연마하는 법도 배울 것이다. 필요한 자질이란 인내심, 자비, 분별력, 신중함 등을 말한다. 이런 훌륭한 자질은 어느 분야에서든 어떤 일을 달성하려면, 꼭 필요하다. 그런데 삶에 큰 목적이 있음을 깨닫고서 그 목적을 실제로 느끼고 또 효과적으로 세상에 적용할 수 있으려면, 이런 훌륭한 자질들이 더더욱 요구될 것이며, 당신은 그 자질들에 의존해야 할 것이다.

이런 훌륭한 자질들은 필요하다. 왜냐하면 당신은 매 순간 큰 깨달음을 얻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매 순간 경이로운 체험을 하지는 못할 것이며, 매 순간 자신감이 넘치지는 못할 것이다. 사실, 이런 체험들 사이에는 긴 시간의 공백이 있을 수 있다. 이때 당신은 결단력과 인내력에 의존해야 하며, 그 순간의 느낌이나 감정에 휘말리지 않는 균형감과 이해력을 길러야 한다. 큰 산을 오르다 보면, 참으로 기쁜 순간도 있겠지만, 참으로 어려운 순간도 있을 것이다. 또한 진짜 확신이 드는 순간도 있겠지만, 참으로 애매한 순간도 있을 것이다. 당신은 가는 도중에 삶의 도전들을 만날 것이다. 또한 이 여행의 결과에 영향을 줄 결단,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삶을 결정하는 중요한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그러니 앎으로 가는 계단을 밟으라. 그 계단을 따라 천천히 그러면서도 꾸준히 올라가라. 앞으로 내달려서도 안 되며, 뒤에 처져서도 안 된다. 여기서는 꾸준히 가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꾸준할 때 당신이 계속 전진할 수 있는 속도로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꾸준해야 자신의 능력을 초과해서 나아가지 않을 것이고, 중요한 것을 하나도 놓치지 않을 것이며, 게으름을 피우거나 일관성을 잃지 않을 것이다. 앎으로 가는 계단, 즉 당신이 직접 만들지 않은 이 준비 프로그램을 꾸준히 할 때, 당신은 삶의 다른 모든 부분에서도 훨씬 더 꾸준히 할 수 있을 것이며, 모든 상황에서 통합된 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당신은 더 이상 분열된 인격체를 모아놓은 복합체가 아니라, 한곳에 집중하고 한곳을 향하는 한 사람이 될 것이다.

이 체험이 어떤 것이고, 또 당신에게 얼마나 많은 힘과 능력을 줄 것인지 말로는 설명할 수 없다. 또한 지금 당신을 좌절시키고 힘들게만 할 뿐인 수많은 오락이나 유혹물에서 이 체험이 어떻게 당신을 자유롭게 해줄 것인지 말로는 설명할 수 없다. 당신이 이런 힘과 자유를 얻을 때, 당신의 특질이나 능력에 진정 어떤 목적이 있는지, 당신의 몸과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체험을 통해 완전히 깨닫게 될 것이다. 또한 삶에 관한 엄청난 철학을 만들지 않아도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때 당신은 삶을 살 것이고, 삶에 가까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오직 당신이 삶에서 떨어져 나와 분리 상태에 있을 때만, 당신의 체험을 정당화하고 왜곡시키는 많은 관념이나 이상주의가 당신에게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삶에 가까이 있고 당신 삶이 진실하고 참되다면, 당신 마음은 이런 엄청난 부담에서 자유로워질 것이다. 자유로운 마음은 초점의 방향을 새롭게 정할 수 있는 마음이고, 생각을 다시 할 수 있어 환경에 대응할 수 있는 마음이다. 또한 큰 통찰을 얻을 수 있고, 또 그렇게 통찰한 것을 적용해볼 수 있는 마음이다.

그럼, 앎으로 가는 계단이란 무엇인가? 앎으로 가는 계단은 어떤 일을 하며, 당신을 어디로 데려가는가? 또 어떻게 하면 당신이 성공적으로 그 계단을 따라 올라갈 수 있는가? 앎으로 가는 계단은 준비 프로그램으로써 큰공동체 앎길을 인간의 체험과 인간 세상에 맞게 변형해 놓은 것이다. 이렇게 변형해 놓은 앎으로 가는 계단이 당신의 앎 속에 있는 큰 영성을 부른다.

앎으로 가는 계단에는 몇 개의 연속된 프로그램들로 이루어졌다. 이 프로그램들은 차례대로 따라갈 수 있도록 잘 설계되어 있다. 앎으로 가는 계단은 체험할 수 있는 큰 자유를 당신에게 준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어떤 식으로도 수정하지 않고 각 계단에서 하라는 대로 따르는 것이다. 당신은 끊임없이 연습에 전념하고 지금 속해 있는 프로그램을 끝까지 해내겠다고 결심하는 것으로 그렇게 할 수 있다. 이런 결심은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큰 도전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은 자신의 현재 관념에 맞는 친숙한 틀 속에서 편안하게 공부하려고 이 프로그램을 바꾸고 싶은 유혹이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앎으로 가는 계단은 친숙한 곳을 넘어 새로운 영역으로 당신을 데려갈 것이고, 현재 당신이 서 있는 곳을 넘어 미래를 위해 중요한 어떤 것으로 데려갈 것이며, 당신의 현재 능력이나 이해를 넘어 훨씬 더 큰 능력과 이해로 데려갈 것이다.

이때 당신은 자신의 신념이나 고정관념 너머까지 기꺼이 가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이때 자신이 누구인지, 왜 여기에 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든 것이 불확실해지는 새로운 체험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러나 이런 불확실성은 계속되는 것이 아니며, 어떤 이해 상태에서 다음 상태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나타낼 뿐이다. 당신은 매번 이런 과도기를 거치면서 더 높은 곳에서 삶을 조망해 볼 기회를 얻을 것이다. 삶을 산으로 비유하자면, 당신은 자신이 어느 지점을 가고 있고 또 얼마만큼 왔는지 볼 수 있는, 전망이 트인 곳을 항상 만나지는 못할 것이다. 오히려 대부분 시간을 다음 한 발을 내딛는 일이나 여행 중의 장애를 헤쳐 나가는 일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게다가 당신은 그 당시 당신이 놓인 처지에 항상 안심할 수도 없을 것이다.

이때 앎이 당신의 안내자다. 앎은 강하고 한결같으며, 순수하고 세상에 영향 받지 않는다. 앎은 삶에서 당신에게 다른 어떤 것과도 감히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힘과 큰 동기를 주며 큰 능력을 갖게 해준다. 그리고 그 많은 보상 가운데 가장 큰 것은 당신 내면에서의 재결합이다. 왜냐하면 당신은 마침내 자신의 삶이 환상이 아니며, 이곳에 올 때 하기로 한 것을 하고 있다고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가는 길을 전혀 설명할 길이 없고 당신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참으로 혼란스럽더라도, 당신은 앎으로 가는 계단을 할 것이다. 그래서 내면의 세계에 더 가까이 다가갈 것이다. 또한 더 현실적이고, 더 냉철하고, 더 효과적이고, 더 자비로운 마음으로 세상에 참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당신의 자비는 이런 여행을 한 체험에서 나올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은 이때 사람들을 실제로 붙잡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때 자유가 진정 무엇을 의미하는지, 또 삶에서 자유를 어떻게 획득하여 보전해야 하는지 깨달을 것이다.

앎으로 가는 계단은 구체적이고 명확하다. 그것은 앎으로 가는 계단이라는 프로그램으로 당신에게 제시된다. 당신은 이 프로그램을 바꾸지 말고 오직 그대로 따르기만 해야 한다. 당신이 앎으로 가는 계단을 그대로 따르는 법을 배울 때, 그 속도에 맞춰 따르는 법도 배울 것이다. 그 속도가 당신에게 익숙한 것보다 더 빠르고 더 꾸준히 진행되는 것일지도 모르나, 당신은 따라갈 수 있을 것이다. 비록 그 속도가 지금까지 당신이 해온 것보다는 빠르겠지만, 당신 능력 너머에 있는 것은 아니다.

앎으로 가는 계단을 따르면서 당신이 조금씩 전진할 때마다 당신 삶이나 주위 상황에 곧바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한 분야에서 확신이 서고 능력이 향상되면, 그 확신과 능력은 결국 당신 삶의 다른 분야로 옮겨 갈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모순되는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 당신은 날이 갈수록 자신의 삶이 진리와 의미를 일관되게 표현하기를 바랄 것이다. 이때 당신은 당신 삶의 점점 더 많은 측면에 앎과 지혜를 옮겨놓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당신은 앎으로 점점 더 강해질 것이다. 왜냐하면 앎이 어쩌다가 여기저기 혹은 이런저런 상황에서만 발산되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자주 더 완전하게 당신에게서 발산될 것이기 때문이다.

앎은 당신이 내면에 지닌 위대한 현존이다. 당신이 앎에 마음을 열어 앎이 당신에게 앎의 세계를 보여주도록 허용한다면, 당신은 앎의 삶을 표현하는 매개체가 될 것이며, 이 삶이야말로 세상에서 당신의 진정한 삶이다. 이때 당신은 당신 내면의 큰 현실세계에 자신을 내준다. 또한 당신이 유일하게 복종할 수 있고 유일하게 자신을 넘겨줄 수 있는 것, 즉 당신의 앎과 다른 사람들의 앎에 복종한다. 이것은 육화된 모든 생명체에 두루 퍼져 있는 진리며, 전 우주 모든 차원의 세계에 걸쳐 적용되는 진리다. 이것은 또한 당신이 이곳에 와서 주기로 한 것, 당신이 이곳에 와서 실현하기로 한 것을 회복시켜주는 진리다.

이 길은 단순하지만, 어렵다. 이 길은 단순하다. 왜냐하면 당신은 앎으로 가는 계단을 따르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당신에게 산을 오를 수 있는 지도가 제공되며, 당신은 이 지도를 벗어나지 않고 그대로 꾸준히 따르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이 길은 어렵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자신의 과거 기준에 맞추기 위하여 어떤 것을 변경하는 일 없이 따르는 데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길은 어렵다. 왜냐하면 당신은 이 준비에 자신을 내맡겨야 하고, 이 준비를 신뢰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길을 따르는 일이 훌륭하게 느껴질 때나 어렵게 느껴질 때나, 당신은 똑같은 신뢰, 똑같은 꾸준함으로 이 길을 걸어가야 한다. 그러면 당신 안에 엄청난 힘이 생긴다. 또한 당신의 생각이나 일에서 자신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당신은 사실, 그 권한을 행사해야만 이 길을 꾸준히 걸어갈 수 있다. 실질적이고 의미 있는 삶을 살려면 이 길을 꼭 따라야 한다. 그리고 이 길을 따를 때, 당신에게 자신의 큰 부름과 목적이 다가올 것이다. 왜냐하면 이때 당신의 부름과 목적이 드러날 수 있는 기반이 깔리기 때문이다.

당신이 진보하여 당신의 이해와 참여가 더욱 성숙해지면, 그때, 아니 오직 그때만 당신의 부름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부름이 확정된 방식으로 오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한 순간에 당신에게 드러나는 어떤 것도 아닐 것이다. 부름은 당신 삶에서 불필요하고 의미 없는 것들이 떨어져 나가거나 포기됐을 때 당신이 찾게 되는 어떤 것이 될 것이다. 그때 남아 있는 것은 없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다. 또 그때 당신이 깨달아야 하는 것으로 가는 길을 찾는 데 자유롭다. 이것이 바로 당신이 부름을 찾는 길이다. 이것 말고는 달리 찾을 길이 없기 때문이다. 당신은 삶에 관해 큰 깨달음만 얻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당신은 그 깨달음으로 가는 길을 배워야 한다. 그래야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삶에서 큰 깨달음으로 가는 길을 찾을 때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길을 알려주고 함께 갈 수 있도록 길을 배워야 한다. 그래서 뒤따라오는 사람들에게 힘을 주고, 앞에 가는 사람들을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앎으로 가는 계단은 쉽고도 어렵다. 앎계단은 쉽다. 왜냐하면 단도직입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신이 그 길을 정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당신의 도전을 방해만 하고 당신을 실패와 불행으로만 이끄는 많은 실수와 재난에서 당신을 구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순한 길이 어렵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단순하다는 것은 신뢰하고 있다는 뜻이며, 자신의 신뢰를 보증하는 것과 못하는 것을 분별할 수 있다는 뜻이다. 단순하다는 것은 삶에 온 정성을 다 쏟는다는 뜻이며, 자신의 삶을 통제할 수 있고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뜻이다. 단순하다는 것은 목적의식이 뚜렷하고 자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있어 불필요한 평가에 괴로워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의 체험이나 기대에 부응하려고 애쓰지 않는다는 뜻이다. 당신 마음이 이러한 것들로 방해받지 않을 때 훨씬 더 높은 수준에서 기능할 것이다.

이때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적절히 걸러지고 재정립되며, 당신의 진정한 동반자들이 당신에게 오는 길을 찾을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그들을 알아보고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 자신도 그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 당신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의미를 어떻게 분별하는지 알 것이다. 왜냐하면 관계에서 의미는 오직 삶에서 정말 크고 중요한 어떤 것을 따를 때만 분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분별은 판단이나 비난의 문제가 아니라 알아보는 수단이 된다. 그래서 좋고 나쁨이 아니라 ‘예, 아니요’가 된다. 당신은 무엇을 따르고 무엇을 따르지 말아야 하는지 알며, 누구와 함께하고 누구와 함께하지 말아야 하는지 안다. 이 모두를 판단이나 비난 없이 한다. 이 얼마나 단순한가! 또 얼마나 단도직입적이고 자연스러운가! 삶을 받아들일 수 있는 당신에게 삶에 얼마나 큰 확신이 들겠는가! 하지만 당신이 만약 자신의 선호나 두려움에 기반을 둔, 당신 개인의 길을 만들거나 개인의 목표를 이루려고 당신 삶과 타협하는 데 익숙하다면, 이것이 얼마나 어려워 보일 수 있겠는가! 만약 당신이 자신의 마음이나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조종하려고 한다면, 이것이 얼마나 어렵겠는가!

큰공동체 앎길은 당신에게 단순하고 강해지는 법을 가르칠 것이다. 또한 나약하고 소심하여 잔꾀를 부리며 살아가는 당신을 구제해줄 것이다. 앎길은 당신의 능력이 강해지고 제대로 파악되도록 당신을 가르칠 것이다. 또한 중심을 못 잡고 피상적으로 살아가야 하는 부담에서 당신을 자유롭게 해줄 것이다.

앎으로 가는 계단은 신비롭다. 당신이 멀리까지 간 다음, 뒤돌아보고 앎계단이 당신을 데려간 곳을 볼 수 있을 때까지는, 당신은 앎계단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마치 큰 산을 오를 때처럼, 한 걸음씩 내디딘 것이 당신을 어디로 데려다주고 당신에게 무엇을 주었는지 알 때까지 당신은 그 각각의 한 걸음에 무슨 의미가 담겨 있는지 알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앎으로 가는 계단을 할 때, 당신이 하는 계단을 판단하지 말라. 어느 계단은 마음에 들겠지만, 어느 계단은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익숙해 보이는 계단도 있겠지만, 생소해 보이는 계단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계단들을 판단하지 말라. 왜냐하면 그 계단들이 당신을 어디로 데려가는지 당신이 깨달을 때까지는 당신은 그 계단들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신은 따라가 보지 않고서는 그 계단들이 당신을 데려가는 곳을 알아낼 수 없다. 이것은 삶의 정글을 지나는 길이다. 길은 좁으며, 특정 경로를 따라간다. 당신이 이 길을 따르면, 위험한 상황들을 지나고 유혹하는 것들을 지난다. 또한 가깝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이질감을 느끼기도 하고, 마음을 산만하게 하는 온갖 오락거리를 지나기도 한다. 당신이 이 길을 따르면, 이 모든 것을 지나 그 너머로 간다. 그러므로 앎으로 가는 계단을 이해하려면, 당신은 그 계단들이 당신을 어디로 데려가는지 알아야 하며, 그 계단들이 당신을 데려가는 곳으로 가야 한다.

앎으로 가는 계단, 즉 큰공동체 앎길은 전적으로 새롭고 다른 어떤 것이다. 당신이 어떤 사람이든, 또 자신이 삶에서 성취한 것이나 배운 것을 얼마나 대단하다고 여기든, 당신은 여기서 초보자로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배운 것을 잊고 새롭게 시작하라. 이렇게 하면, 배울 수 있는 최상의 것을 배울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여기서 밟아가는 모든 계단과 일어나는 모든 일을 단순히 당신의 과거 기준에 따라 평가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과거에 묶여 있어 현재로 들어가거나 미래로 옮겨가지 못할 것이다. 앎으로 가는 계단은 당신의 과거나 세상의 과거로부터 빠져나오는 길을 제공함으로써 당신을 과거로부터 자유롭게 해준다. 왜냐하면 과거에서 온 그 어떤 것도 효과적으로 당신을 미래로 이끌 수 없기 때문이다.

큰공동체 앎길은 현재와 미래를 이야기한다. 큰공동체 앎길은 준비의 길이다. 당신은 이 길을 통해, 온전히 현재에 살고, 또 미래에도 현재에 사는 기회를 얻도록 미래를 온전하게 준비한다. 바로 이 때문에 쉬운 것이 어려워 보인다. 쉬운 것을 따르려면, 당신은 단순해져야 한다. 또한 복잡하게 꼬인 당신 삶, 즉 자신을 과거나 양면성에 묶어둘 뿐인 그런 삶에서 탈출구를 찾아내야 한다. 참된 삶으로 여행하려면, 당신은 다른 길을 따라야 한다.

그러므로 초보자로서 시작하라. 자신을 제법 많이 아는 사람으로 여기지 말라. 실제로 당신은 많이 알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을 대단히 능력 있는 사람으로 여기지 말라. 삶의 큰 맥락 안에서 보면, 당신의 능력이 대단치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상태를 겸허히 인정하라. 그러나 이때 자신을 비난하지는 말라. 이렇게 함으로써, 당신은 오직 마음을 열 때만 배울 수 있는 것을 배우는 데 마음을 연다. 앎계단을 판단하지 말라. 당신은 앎계단을 판단할 수 없다. 앎계단은 당신의 과거를 옳은 것으로 확증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과거에서 끌어낼 것이다.

과거는 당신 뒤에 있는 것이고, 미래는 당신 앞에 있는 것이며, 현재는 당신이 과거나 미래와의 관계를 체험하는 방식이다. 현재를 체험하려면, 당신은 과거와 미래 양쪽 모두와 바른 관계를 가져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온전히 현재 속으로 들어갈 수 없다. 앎은 매 순간 현재에 있다. 앎은 마음의 완벽한 현재 상태를 말한다. 앎은 마음의 유일한 현재 상태다. 앎에 더 가까이 다가갈수록 당신은 삶에 더욱더 현존한다. 그럼에도 마음의 현재 상태는 여전히 세상의 흐름, 세상의 미래와 온전히 결합된다. 마음의 현재 상태는 당신의 정신 훈련 수단, 혹은 수용하거나 체험해볼 수 없는 세상에서 도피 수단으로 당신 혼자서 만드는 어떤 것이 아니다. 이런 것들은 환멸만을 낳고 삶과 괴리감만 더 키울 뿐이다.

앎으로 가는 계단은 현재 있는 그대로, 또 미래 있는 그대로의 삶으로 당신을 데려간다. 앎으로 가는 계단은 현재는 물론 미래에도 있는 그대로의 당신 삶으로 당신을 데려간다. 또한 당신이 현재는 물론 미래에도 있는 그대로의 다른 사람들과 결합할 수 있게 해준다. 이 얼마나 단순한가! 그럼에도 처음에는 참으로 어려워 보일 수 있다. 당신이 앎으로 가는 계단을 하면서 효과적으로 따르는 법을 배울 때, 당신의 짐은 점점 더 가벼워질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의 행복이나 성취에 불필요한 것에서 당신이 자유로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당신이 진정으로 찾던 것을 결코 주지 못한 해로운 관계나 의미 없는 추구에서 당신 삶이 자유로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은 자연스레 떨어져 나간다. 그것들을 당신에게서 떼어내는 것이 아니다. 당신은 그것들과 함께 삶의 큰 체험으로 들어갈 수 없으므로 그것들을 한쪽에 그대로 둔다. 그래서 그것들은 문 앞에 놓인 채로 있다. 당신은 자발적으로 그것들을 포기한다. 그래서 당신은 마침내 짐을 덜게 되고, 이때 길이 단순해지고 넓어진다. 이처럼 길이 단순하고 넓어질 때, 당신의 체험과 이해는 더 깊어지고 더 안으로 파고들게 된다. 또한 당신의 마음은 더 집중하게 되고 한결같아진다. 그리고 당신의 결단력은 더 강해지고, 다른 사람들에 대한 당신의 분별력은 더 명확해진다. 또한 진리와 함께하는 당신의 능력, 불확실성을 담고 있는 당신의 능력이 모두 점점 더 향상된다. 이때 관계를 받아들이는 당신의 능력이 훨씬 더 향상된다. 그러면 당신은 이번 생에서 결합하기로 한 사람들, 즉 큰 관계를 가진 사람들과 결합할 수 있다. 그리하여 당신 안에서 관계를 받아들이는 더 큰 능력이 세워지면, 창조주와의 관계 그리고 다세계 큰공동체와의 관계가 당신에게 열릴 것이다.

시작하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지만, 당신이 시작할 수 있다면, 계속 나아갈 수 있다. 당신이 계속 나아갈 수 있다면, 점점 더 높이 올라갈 수 있다. 당신이 더 높이 올라갈 수 있다면, 목적지에 다가갈 수 있다. 당신이 목적지에 다가갈 수 있다면, 그때 당신은 이렇게 진행한 모든 단계를 이해할 수 있다. 그러면 당신은 시작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할 것이고, 더 높이 올라가 목적지에 다가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할 것이다.

앎으로 가는 계단은 당신이 어떤 영웅이나 인물을 숭배하도록 요구하지 않는다. 그리고 불가능해 보이며 믿기도 어려운 창조 이야기를 받아들이도록 요구하지 않는다. 또한 만신전의 신들, 이미지나 상징, 예식이나 성대한 의식, 특출한 인물 등을 믿도록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당신이 정말로 아는 것이 무엇인가를 묻는 큰 의문으로 당신을 데려갈 뿐이다. 그리고 이 의문을 말로 대답해주는 대신, 당신이 많은 계단을 밟아 성장 단계들을 거침으로써 앎 자체를 서서히 체험할 수 있도록 이끈다. 당신이 계속 진행해나가면, 진보할 것이다. 당신이 진보하면, 이해할 것이다. 당신이 이해하면, 당신은 그때 알 것이다.

앎으로 가는 계단은 당신에게 새로운 삶을 줄 것이다. 당신에게 타향 같은 이질적인 삶이 아니라, 당신에게 고향 같은 친숙한 삶, 또 과거 경험이나 평가에 묶여 있는 삶이 아니라, 이 순간의 참된 삶, 큰 가능성과 큰 관계를 가진 삶을 줄 것이다. 그리하여 당신의 가장 근원적인 욕구를 채워주고 가장 깊은 의문을 풀어줄 것이다. 이런 일이 가능한 곳에 당신을 데려가는 것으로 이렇게 할 것이다. 알아야 할 것을 알고, 보아야 할 것을 보고, 해야 할 것을 하려면, 당신은 삶에서 훨씬 더 지켜보기 좋은 곳까지 올라가야 한다. 그곳에 오르려면, 당신은 많은 계단을 밟으며 여행해야 한다. 바로 그 계단이 앎으로 가는 계단에 있다.

우리는 당신이 큰공동체 앎길을 배울 수 있도록 바로 그 계단을 제공하였다. 바로 이 앎계단이 당신을 목적지로 데려갈 것이다. 하지만 당신은 그 계단을 따라야 하고 인내해야 한다. 왜냐하면 당신이 전혀 알지조차 못한 것까지 상당수 포함해서 도중에 배워야 하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또 당신이 처음에는 알 수 없지만 도중에 습득하고 강화해야 하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당신은 큰공동체 앎길을 배울 수 있고, 체험할 수 있다. 또한 여러 계단에서 배운 것을 통합할 수 있고, 세상에 적용하며 살 수 있다. 이런 일이 가능하도록 우리는 앎계단을 제공한다. 앎계단을 따르라. 맹목적으로 따르지 말고 눈을 크게 뜨고 따르라. 앎계단이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해줄 것인지에 대해 헛된 가정을 하지 말고, 마음의 현재 상태에서 앎계단이 이끄는 곳으로 따르라. 길을 따라 걷는 법을 배우라. 그러면 앞에 가는 사람도 있고 뒤에 따라오는 사람도 있음을 알 것이다. 앞에 가는 사람들은 당신에게 용기를 주고, 길을 가리켜준다. 또한 당신이 이해하든 못하든 계속 나아가야 한다는 확신을 준다.

앎으로 가는 계단은 당신이 자신이 누구인지, 또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확신할 수 없는, 그런 대전환기를 지나도록 할 것이다. 그리고 당신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규정하는, 그런 단계에서 더 깊은 체험과 깨달음으로 당신을 데려갈 것이다. 앎으로 가는 계단은 당신이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하는, 그런 어려운 시기를 지나도록 할 것이다. 또한 당신이 완전히 새롭고 깊숙이 스며드는 방식으로 당신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체험하는, 그런 경이로운 순간들로 당신을 데려갈 것이다.

이때 당신은 자신이 진보하고 있고, 당신과 함께 다른 사람들, 지구뿐만 아니라 다른 행성에 있는 사람까지 함께 진보하고 있음을 깨달을 것이다. 왜냐하면 큰공동체 앎길, 즉 앎으로 가는 계단은 많은 행성,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행성에서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창조주의 큰 계획을 보여주며, 우주를 순수한 통합과 단순함의 상태로 회복하려는 삶의 큰 목적과 사명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당신은 지금 우주의 큰 뜻에서 나온 준비의 고대 의식을 따르고 있다. 큰공동체 앎길에 있는 이 준비가 지금 당신과 지구를 위해 제공되고 있다. 이 앎길은 당신 삶의 신비 속으로 들어갈 뿐만 아니라, 당신 삶이 지금 출현하는 큰공동체의 웅대함 속으로도 들어간다. 이것이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큰 가능성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당신은 지금 삶의 큰 부름과 큰 의미에 응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부름과 의미는 당신이 고향에서 가져왔으며, 지금 당신 내면에 머물며 이제 당신에게서 드러나야 한다.